정체 된 고속도로 같은 세상에서 90년대를 추억한다.


90년대 초에 태어난 나에게 과거 이야기는 누구에게는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90년대 말에서 2000년 초는 한국이 가장 빠르게 변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내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워낙 빠르게 바뀌는 시기라서 그렇게 느꼈던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빨리 움직이며 세상이 빨리 움직인다 착각 한 것 일 수 있다.
출처:  http://www.rhsmpsychology.com/Handouts/monocular_cues_IV.htm

그러나 그럼에도 90년대 말은 ‘새천년(이 표현도 오랜만이다)’의 시작이었고 마지막 아날로그 중심의 사회였던 것 같다.

(1) 불광동을 이야기 하는 이

나는 이사를 많이 다녀서 지내온 곳은 많다. 그럼에도 불광동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 한 내 기억속 사회의 역동성이 가장 높았을 시기 내가 살던 곳이 불광동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시기 기억이 내 기억 속 마지막 아날로그 시대인 것 같아서 더욱 특별하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멋진 글이나 사물을 통해 단서를 끌어 낼 수 있다. 특히 요즘은 레트로가 인기라 하며 추억을 자극하는 다양한 상품이 인기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력한 것은 냄새다. 냄새는 물리적 자극에 연결된 정서를 불러오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을 넘어서서 다시 경험 할 수 있게 해준다.

아날로그스러운 것은 물리적 사물에 의해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정서경험에 더 의존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냄새는 휘발적이다. 종종 냄새는 감정이 금방 사라지는 것 보다 더 빠르게 사라진다. 냄새가 열어주면 다시 경험 할 준비가 되어있다 하여도 유사한 냄새가 오지 않는다면 문을 열기 쉽지 않다.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냄새를 불러온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해당 추억과 관련된 음식이다. 음식은 필수적으로 냄새를 동반하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오랜 추억을 ‘여기’로 불러올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어린시절 추억을 대표할만한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또 다른 방법으로 장소가 있다. 장소는 그 자체가 냄새가 나진 않지만 장소에 수반하는 기억의 조각들은 냄새를 자극하여 간접적으로 경험 할 수 있다. 물론 직접 그 장소에 가서 해당 냄새를 경험 할 수도 있다.

이제부터 이야기 하는 공간은 균질적이지 않은 공간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틀린말이지만 개인에게 지각되는 모든 공간은 균질적이지 않다.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이 내게 그렇다. 그렇다면 객관적 불광동과 주관적 불광동을 나누어 소개하겠다.

(2) 객관적 불광동

객관적 불광동을 알아보기위해 인터넷에 검색해보었다.

1)위키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불광동(佛光洞)은 서울특별시 은평구의 법정동으로, 행정동은 불광1동, 불광2동으로 구별된다.”

2)은평구청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서울특별시 은평구의 동북쪽에 위치한 불광동의 동명은 이 근처에 바위와 대소 사찰이 많아 부처의 서광이 서려있다고 해서 전해지는 데서 유래되었다. 불광동 지역에는 삼각산 자락을 중심으로 불광사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불광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하였다. 고종 4년(1867)에 편찬된 『육전조례』에는 한성부 북부 연은방(성외) 불광산계라 하였다.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한성부 북서(北署) 연은방(성외) 불광리계 불광리 · 박석동 · 사정동 · 관동, 갈현계 박석동이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경성부를 5부 36방으로, 성외를 8면으로 할 때 경성부 은평면 불광리 · 사정동 · 관동 · 박석동이 되었다.”

객관적인 불광동은 사실 그리 특색이 있는 동네는 아니다.

(3) 주관적 불광동

불광동에 내가 처음 이사 간 것은 1993년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난 이때 너무 어렸기에 기억은 없다. 불광동에 대한 처음 기억은 명확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나는 똥 냄새다. 그 때 당시 내가 살던 곳은 현 불광동성당 뒷 쪽이었는데 대부분의 집들이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 했었으며 주기적으로 “똥차”가 왔기에 이런 기억이 나는 것 같다. 특히 산비탈에 위치하여 윗쪽 집 부터 분변을 빼기 시작하면 동네가 고약한 냄새로 가득 찼다.

분명 기억속에는 이보다 거대하고 무언가 엄청난(?!)느낌을 주었던 것 같은데 사진으로 보니 아담해 보인다. 아니면 저 차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14652

그 때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참 아쉽다. 개인적인 아쉬움도 그렇지만 그 때의 흔적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전 그 장소를 가본 적이 있었는데 내가 살던 달동네는 꽤 비싼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도로의 가파른 경사 정도만이 흔적 아닌 흔적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불광동성당이다.

출처: 네이버 로드뷰:

어릴 적 가장 오래 있던 곳은 아마도 불광동 성당일 것이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바다의 별”유치원을 다녔으니 일상 중 1/3은 이곳에 있었던 것 같다. 거의 모든 것이 다 변해버린 불광동에 거의 변하지 않은 곳이 불광동 성당이다.

출처: 평화방송

독특한 외관 만큼이나 안에는 미로같은 모양이 있으며 성당까지 걸어가는 길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어릴적 이곳은 내게 마법의 성 처럼 느껴졌으며 이사를 가고 난 뒤 해리포터를 보았을 때 호그와트를 보며 불광동 성당을 떠올렸었다.

물론 어릴적 기억과 지금 다시 경험한 성당의 모습은 꽤 많이 다르다. 가장 큰 것이 규모이다. 그때는 내가 작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상대적 크기가 참 많이 변했다. 어릴 적 불광동성당은 인근에서 가장 큰 건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워낙 옆에 웅장한 아파트와 상가들이 있어서 그냥 조그마한 건축물이 되었다. 게다가 건축물 자체도 내가 살던 곳의 재개발로 인해 많이 상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추억의 향기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준으로 남아 있어줘서 고마움을 느낀다.

재개발 당시 불광동 성당.
출처: https://www.hani.co.kr/arti/PRINT/371723.html

글을 마치며….

내가 25년 전으로 다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불광동성당으로 돌아가 실컷 뛰어 놀 것 같다. 이제는 몸이 커서 뛸 공간이 성당에 없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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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to: 90년대 말 불광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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